[한국기술뉴스] 자객은 들키지 않게 무기를 몸속에 숨겼다가 목표물이 가까워지면 잽싸게 꺼내서 공격한다. 이러한 자객과 같이 암세포가 있는 곳으로 찾아 들어가, 집중적으로 공격을 펼치는 약물이 나왔다.
포항공과대학교 화학과 김원종 교수 연구팀은 생체 단백질인 알부민과 결합해 림프절 내 암세포를 제거하는 자가-희생 일산화질소 전구약물(self-immolative nitric oxide prodrug)을 개발했다. 전구약물이란 몸속에서 대사 과정을 거쳐야 효과가 나타나는 약물을 말한다.
일산화질소는 몸속에서 다양한 생체 기능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치료에 활용하려는 연구들이 진행돼왔다. 그러나 이전까지 개발된 일산화질소 약물은 분자의 구조적 불안정성으로 인해 기체가 자발적으로 빠져나가 실질적으로 치료에 적용하기 어려웠다. 김원종 교수팀이 개발한 약물은 몸속에서 선택적으로 반응해 일산화질소를 방출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번 연구에서는 림프절로 빠르게 이동하는 알부민의 특성을 이용해 전구약물이 림프절 내 암세포를 제거하도록 했다.
소동물 대상의 연구 결과, 약물로 치료한 소동물은 그렇지 않은 소동물보다 림프절로 전이된 암세포 무게가 약 30배 적었다. 또한 약물로 치료한 소동물이 85% 생존한 반면, 치료하지 않은 소동물은 14%만이 생존했다. 이 약물은 기존의 일산화질소 약물과 달리 물과 닿아도 저절로 분해되지 않아 보관하거나 운반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부작용도 림프절을 제거하는 수술에 비해 현저히 낮다. 특히 약물을 구성하는 3-모르폴리노시드노이민 염산염(SIN-1, 3-Morpholinosydnonimine hydrochloride)이 이미 임상에서 이용되고 있으며 알부민 또한 몸속에 존재하는 단백질이므로 상용화될 가능성이 더욱 크다.
김원종 교수는 “자가-희생 일산화질소 전구약물로 일산화질소의 부작용은 최소화하고 치료 효과는 극대화할 수 있다”며 “향후 암, 자가면역질환, 난치성 신경질환, 감염성질환 등의 예방 또는 치료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학술지 ‘어드밴스드 사이언스(Advanced Science)’에 지난 5일 게재된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의 미래소재디스커버리사업, 전략과제, 기초연구실 사업의 지원을 받았으며, ㈜옴니아메드와 POSTECH의 산학과제로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