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술뉴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 차세대 이차전지로 떠오르고 있는 수계아연이차전지의 음극 표면 안정화 기술을 개발하여 상용화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배터리 수명저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성공했다.
최근 정부의 그린뉴딜 정책 추진으로 태양광, 풍력과 같은 재생에너지 발전설비가 매년 10% 이상 급증하면서 탄소중립 사회로 빠르게 나아가고 있다.
그런데 재생에너지는 기후 상황에 따라 전력발생량이 수시로 변동되므로,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서는 그 출력을 제어하고 잉여전력을 저장해주는 에너지저장장치(ESS)가 필수적이다. 현재 국내에 설치된 ESS에서는 대부분 리튬이온전지를 쓰고 있는데, 최근 4년간 ESS 화재사고가 수십 건 가량 끊임없이 발생해 이차전지에 대한 안전성 논란이 불거진 상황이다.
반면, ‘수계아연이차전지’는 물 기반 전해질을 사용하기 때문에 발화 위험이 없고 안정성도 높아 리튬이온전지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또한 고온 열처리 없이 양극재의 합성이 가능하며, 드라이룸(Dry room)이 아닌 일반 대기 중에서 전지를 조립할 수 있어 공정상의 이점도 크다.
하지만 아연 금속을 음극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물 기반 전해질 속에서 부식이 일어나게 되고, 특히 아연 이온이 음극 표면에 나뭇가지 형태의 결정체로 뾰족하게 쌓이기 쉽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덴드라이트(Dendrite)’라고 불리는 이 결정체는 충방전 반응에 거의 참여하지 않고 계속 성장하는데, 분리막*을 뚫고 양극에 맞닿게 될 경우 결국 단락을 일으켜 전지 수명을 급격히 저하시키고 화재를 유발한다.
생기원 제주본부 청정웰빙연구그룹 김찬훈 박사 연구팀은 아연 음극 표면의 화학적 성질에 따라 덴드라이트 형성이 억제되고 그 형태도 달라지는 것을 전자현미경을 통해 세계 최초로 관찰해냈다. 즉, 아연 음극 표면이 물 분자와 쉽게 결합하는 ‘친수성’ 상태일수록 배터리 충전 시 아연 이온이 음극 표면에 더욱 균일하게 흡착돼 덴드라이트 형성이 억제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반대로 ‘소수성’ 상태의 음극 표면인 경우, 그 성질이 비교적 덜한 곳으로 아연 이온 분포가 집중되어 구(球) 형태를 띤 수십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덴드라이트가 군데군데 생성되는 것도 포착했다. 나아가, 연구팀은 간편한 ‘딥 코팅(Dip-Coating)’ 공정을 통해 500 나노미터(㎚) 두께의 얇은 친수성 보호막을 음극 표면에 고르게 형성하여 덴드라이트 형성과 부식 반응을 효과적으로 억제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딥 코팅’ 공정이란 음극 재료를 코팅 용액에 담가 층을 만든 후 가열해 보호막을 형성하는 방법으로, 연속 공정에 유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이 방식으로 음극 보호막을 형성한 결과, 약 3,000회에 달하는 가혹한 충방전 반복실험에서도 용량유지율 93%라는 안정적인 수명 특성을 보여줬다. 또한 충전전력이 자연적으로 소모되는 비율인 ‘자기 방전율’역시 코팅되지 않은 음극 대비 2배 이상 억제되는 효과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아연 음극 보호에 관한 기존 연구들이 손톱 크기의 코인셀(Coin-cell)을 대상으로 한 실험실 수준에 머물렀다면, 이번 연구는 이보다 150배 이상 큰 대면적(176㎠) 아연 음극에서도 간편한 공정만으로 보호막을 형성해내 양산 가능성을 입증했다는 점에서 차별화됐다.
김찬훈 박사는 “제주도는 재생에너지 과잉발전으로 인한 출력제어 문제가 국내에서 제일 먼저 발생해 화재 위험 없는 차세대 ESS 도입이 가장 시급한 곳”이라며, “이번 연구로 수계아연전지의 기술적 난제를 해결하고 상용화 가능성까지 높여 제주형 ESS 조기 개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